하나님 아버지의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그 능력이 여자를 덮어 아들 예수가 태어난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성령의 모습으로 마리아에게임하신다. 즉 아버지가 남편의 모습이 되어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그 결과 아들이 태어난다. 그래서 그 아들 예수는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유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의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신다. 이것을 깨달은 아브라함은 군소리 한마디 못하고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영적인 남편은 하나님
이스라엘 남자들은 다 할례를 받았고, 따라서 이스라엘 여자들의 영적인 남편은 하나님인 것이다. 즉 하나님 아버지가 남편이 되어 이스라엘 민족이 태어났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낳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인 동시에 남편인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이외의 신을 경배하면 이는 간음하는 것이 된다.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인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 이외의 신을 섬기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받았느냐. 던 토리 박사가 무엇인가. 성 1위서. 의신부로서 한국이다. 그는 20사는 삶의 모경적 가르침을
시아버지 유다
시아버지 유다는 남편이 되어 다말과 동침해서 아들 베레스를 낳는다.
하나님 아버지는 성령의 모습으로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즉 남편의 모습으로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아들 예수를 낳는다. 이 두 사건은 똑같은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 유다와 다말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그런 사건을 일으키게 하시고, 그것으로 그 후에 일어날 성령 잉태로 인한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출생을 예언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아버지가 남편이 되어 아들을 낳는 사건,
시아버지가 남편이 되어 아들을 낳은 사건, 하나님 아버지가 남편이 되어 여자에게 임하시고 예수를 낳은 사건은,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 일어나고 있다.
아버지인 유다는 남편의 위치로 한 단계 아래로 내려왔고, 반면 베레스는 한 단계 위로 올라간다. 유다와 다말이 동침해서 | 베레스를 낳았지만,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이며, 베레스는 유다의 아들이기 때문에, 며느리인 다말과 아들인 베레스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유다는 한 자리 내려 왔고, 베레스는 한 자리 올라섰다. 그런데, 여기에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숨어 있
연 있는 가그는 하니했다. 참하여야 한
하나님이 성령의 모습
하나님이 성령의 모습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가 태어난 것처럼, 지금도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가 성령과 하나가 되어(성령으로 거듭나서) 생명(구원)을 얻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신랑 예수와 신부인 우리가 혼인식을 올림으로 우리는 하늘 나라에서 영생을 얻게 된다.
시아버지 유다는 며느리인 다말과 동침해서 베레스를 낳았다.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다면 그것은 당연히 시아버지인 유다의 손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말이 낳은 베레스는 손자가 아니라 그의 아들이다. 따라서 아래의 〈그림1)은〈그림2)로 바뀌어야 한다.
(그림1)
유다. / 남편 + 다말
(그림2)유다.
남편 + 다말 = 베레스 11
베레스<그림1>에 있어서 베레스는 유다의 손자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베레스는 유다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베레스는 〈그림2)처럼 유다의 아들의 위치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림2)를 다시 보시기 바란다. 다말을 중심으로 해서 시아
동정녀 마리아는 신약 교회
예수(생명)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낳았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시다. 따라서 예수님은 아들의 자리로 한 단계 올라가야 한다.
성경에서 여자는 성도 또는 교회를 뜻한다. 마리아는 여자이고 따라서 동정녀 마리아는 신약 교회를 뜻한다.
그러므로, 〈그림3)을 아래의 〈그림4)로 바꾸어 놓을 수가 있다. (그림4)
성령 + 성도(교회) = 생명
(생명)(그림4)를 보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과 하나가 되어 낳은 예수가 교회의 생명이 된 것처럼, 우리 성도, 교회)가 성령과 하나가 되어야 생
한 심령과 신다. 저자주고 있다.
명을 낳게 되는 데, 그렇게 낳은 생명이 바로 우리 자신의 생명이 된다는 사실이다. "믿습니다!"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낳아야 한다
성령과 하나가 되어 생명을 낳아야 한다. 그래야 그 생명이나의 생명이 되고, 그 생명으로 나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다말이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해서 베레스를 낳고, 그 베레스가 유다의 가계를 이어 받고, 그 집에서 다윗 왕과 예수님이 나오신 것처럼,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을 받아 예수를 낳고, 그 예수가 교회의 생명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과 하나가 되어 생명을 낳아야 그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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