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고 동시에 남편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혼인을 함으로 예수님의 신부가 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아버지의 며느리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과 혼인을 하여 예수님의 신부가 되지만, 하나님에게는 며느리가 아닌 자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건 또 왜 그럴까? 여자(며느리 = 성도= 교회)는 그 자체로는 아무 생명도 없다. 마치, 땅 그 자체에는 아무 생명도 없고 씨앗을 뿌리고 하늘에서 햇볕과 비를 내려야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듯이, 아무 생명도 없는 여자(며느리, 성도,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들(예수)이 와서 그 속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아들은 생명이고, 생명은 아들이다. 여자(며느리 = 성도=교회)가 아들에 의해서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을 자기의 생명으로 소유하게 될 때, 그들은 생명을 소유하게 됨으로, 여자(며느리)에서 아들(자녀)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여자(며느리)는 하늘의 유업을 물려 받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와 혼인을 하는 우리들을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그 자녀로 삼아 주시는 것이다.
이제, 〈그림5>를 보자.
〈그림5)
하나님 v신랑 예수+신부 교회 = 영생
성도의 자격
우리가 지금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받아 누리는 영생은 실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영생일 뿐이다. 참 영생, 실질적인 영생은 예수가 재림하신 다음, 신랑 예수와 우리 신부 성도가 하늘에서 혼인식을 올려야 한다.
그럼, 신랑 예수와 혼인을 할 수 있는 신부 성도의 자격은 무엇인가?
성령과 하나가 되어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된 신부 성도, 신부 교회이다. 이 신부 교회, 신부 성도가 어린양신랑 예수와 혼인을 해야 하늘 나라에 올라가 영원한 생명,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 구원의 원리
이상 설명한 것이,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이 동침해서 자식을 낳는 창세기 38장이 숨겨 가지고 있는 비밀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인간 구원의 원리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기 위해, 유다와 다말이라는 두 인물을 역사라는 무대 위에 등장시키셨고, 그들을 그렇게 하게 하셨고, 성경 기자로 하여금 그것을 그대로 기록하게 하셨다.
성경은 그 낱말 하나 하나도 버릴 수 없는 , 참으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성경 말씀은, 1) 피부=표면적인 뜻(또는 역사적 사실)2) 살=원리(또는 교훈)3) 뼈=예언 이렇게 3충으로 되어 있다. 창세기 38장도 또한 이런 3층 구조를 하고 있다. 1)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며, 2) 이 사건 속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대원리가 숨겨져 있으며,
3) 그리고 그 이야기가 숨겨 가지고 있었던 예언은 신약에 와서 마리아의 성령 잉태와 예수 출생으로 현실적으로 성취되었다.
지 사건들을 연출하고 있지만, 단지 그 시대가 바뀌고 등장 인물들이 다를 뿐, 그들은 언제나 같은 사건들을 반복해서 연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성경 말씀은 수 없는 반복이다. 같은 원리에 의한 동일한 사건의 수 없는 반복인 것이다. 전도서 3장 1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지금 있는 것이 이미 옛날에도 있었고, 장래에 일어날 일들도 이미 옛적에 즉 구약에 다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다.
종말에 대한 거짓 계시
종말에 대한 거짓 계시를 경계하라
그런데, 이렇게 해서 성취된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 잉태와 예수 출생은 또다시 위의 세 가지 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 잉태와 예수 출생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다.
2) 이 이야기 속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대원리가 숨겨져 있다.
3) 이 이야기는 마지막 때에 있을 신랑 예수와 신부 성도(교회)의 혼인을 예언하고 있으며, 이것은 은혜 시대에 영적으로 성취되고 있으며, 마지막 때에 현실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이 쓴 종말론, 특히 휴거에 대해 쓴 책을 읽고, 그것을 앵무새처럼 문자적으로 인용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종말에 관한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종말론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도 이리저리 성경 말씀을 인용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며, 또 그들이 받았다고 하는 계시는 그 대부분이 엉터리 계시인 것이다.
그런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받았다고 하는 계시를 그들이 쓴 책을 통해 읽어 보면 모두가 자기 자신의 생각을 계시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들이다.
종말에 대한 계시
도대체 계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계시를 받았다고 떠들어대고 있으며, 그들이 받았다고 말하는 그 게시의 내용 그 자체가 바로 그 계시가 엉터리 계시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계시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계시 받는 것으로 말한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필자만큼 늘 계시를 받고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의 많은 말씀들(사건들)은 그 시대와 사람은 바뀌어도 그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과 신약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여러가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종말에 대한 계시는 결코 기도해서 받아지는 것이 아니다. 종말에 대한 계시는 말씀을 통해 온다.
이 말의 뜻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산에 가서 혹은 교회 마루바닥에 엎드려 주여, 주여, 외친다고 받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말에 관한 계시는 성경을 바로 깨닫고 그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서 온다. 종말에 대한 계시는 종말의 말씀을 통해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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