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교회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용서하신 죄로즉 율법을 어긴 죄로 - 율법에 의하면 그런 여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율법 수호자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에의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
신약 교회
그러나, 이로 인하여 예수는 부활 승천하고 간음한 여자도 구원을 받는다. 간음한 여자란 누구인가? 여자=교회간음한 여자 =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구약 교회예수께서는 간음한 여자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 간음한여자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그들의 죄를 씻으시고,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승천하신다. 그리고, 생명(신약 교회)이 태어난다.
26절의 말씀
26절의 말씀 중에서그는 나보다 옳도다= 율법을 버리고 복음을 받아들여 생명을잉태한 신약 교회는 율법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 구약교회 성도가 율법을 버리고 예수를 영접한 것은 율법이 그들에게 생명을 낳게 하지 못한 연고라.
29-30절의 말씀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 지라 산파가 가로되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세라라 불렀더라"
육적 이스라엘의 상속자
형 베레스=육적 이스라엘의 상속자아우 세라=영적 이스라엘의 상속자 홍사=십자가의 피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받아 거듭나야 즉 죄 앞에 우리의 육이 죽고 영이 거듭나야 구원을 받는다.
마지막 때에, 우리의 육의 옷을 벗고,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죽었다가 부활하거나 아니면 홀연히 변화받아 육의 몸에서 벗어나서 썩지 아니하는 옷으로 갈아 입을 때 구원은 완성된다.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
마태복음 24장 19절의 말씀을 보자.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내가 초신자 때, 나는 이 말씀의 뜻을 몰라서 목사님께 그것을 물었다. 목사님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고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 날은 대환난의 날이구요, 환난의 날 그 난리통에 아이배서 몸이 무거운 여자나 젖먹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는 도망가기도 어렵고, 그래서 화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는 나도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말씀을 조금씩 깨닫게 되고 보니 그 말씀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환난의 날에 아이 벤 자들이나 젖먹이를 가진 여자들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해석과 의견을 토대로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다양하게 알려진 종말과 예언에 관한 성경을 탐구해보고 있습니다.
이 몸이 무거워서 도망가기가 부자유스러워 화가 있다면, 그럼, 다리를 저는 사람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다 화가 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아이 밴 여자들과 젖을 먹이는 자들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일까?
주님 계시록
주님 계시록이라고도 하는 이 마태복음 24장 중에서 매우 난해한 귀절이기도한 19절의 말씀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께서 말씀하신 '아이 밴 자’가 누구며, 또 ‘젖 먹이는 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아이 밴 자’는 여자이고, 아이는 생명을 뜻한다. 여자는 교회, 또는 성도를 뜻한다. 아이 밴 자란, 그 안에 생명을 잉태한 자, 그러나 아직 그 생명을 낳지는 못한 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아이 밴 자’란, 그 안에 생명을 잉태하기는 했으나 아직 낳지는 못한 교회, 또 그런 성도를 가리킨다.
또, ‘젖 먹이는 자’란, 생명을 낳았으나 그 생명이 아직은 젖먹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그런 교회, 그런 성도를 뜻한다.
지 우리 안에 생명을 잉태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 받아 거듭났을 때, 우리는 '아이 밴 여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아이를 낳아야 하고, 젖을 먹여 키워야 한다. 어른이 되도록 키워야 한다. 즉 우리의 영이 어른으로 성장을 해야 영생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잉태는 했으나 아직 태어나지는 못한 생명, 낳기는 했으나 아직 젖먹이 수준의 신앙은 롯과 같은 믿음이며,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여 하나님이 토하여 내치는 믿음이며, 가룟 유다처럼 끝내는 주를 배반하고마는 믿음인 것이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차라리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였더라면 그는 예수를 파는 그 저주스런 자리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믿음이 차라리차가운 것이었다면 즉 그가 처음부터 예수를 따라다니지 아니하였더라면, 그에게 그런 저주는 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26장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아이 밴 자의 믿음
아이 밴 자의 믿음, 젖먹이는 자의 믿음밖에는 없는 자들은 마지막 환난 때에 주를 배반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화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차라리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제게 좋을 뻔 했다. 예수를 믿고 예수의 사랑을 체험하고 예수의 구속의 은총을 깨닫고 난 다음에 예수를 파는 죄는 처음부터 예수를 믿지 않은 죄보다도 훨씬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이 받는 화란 무엇인가? 육신적인 화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그 연약한 믿음으로 해서 육이 살고자 주를 배반하고 그 댓가로 그 영이 영원한 지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 잉태와 예수 출생의 그림을 다시 한번 보자. 하나님 성령 + 마리아 = 예수(생명)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 위에서 고통 (0) | 2022.03.08 |
---|---|
성령으로 내가 거듭날 때 (0) | 2022.03.08 |
엘 같은 사람 (0) | 2022.03.08 |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0) | 2022.03.03 |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 (0) | 2022.03.03 |
댓글